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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짓말

스타트업에 관한 강연과 글로 활동하는 뮌헨 출신의 블로거 얀 지라드가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약간의 의역을 포함시켰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활방식, 문화에 대한 자아비판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디지털 노마드에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세 달 반 동안 나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동시에 업무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음.. 최소한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나는 내 소개를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물론 나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이 아니기도 하다. 어떤 게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디지털 노마드라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내가 거쳐간 곳은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였다. 이런 멋진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시간이 꽤 걸리는 새로운 작업들과 함께 다른 모든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무척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배운 것은, 여행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걸 창조하기란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도 원래 무척 힘든 작업이다. 뭐가 문제고 뭐가 방해가 되는지 잘 알고있는 환경에서도 그럴진대, 여행 기간에 뭔가를 만들어내기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모든 것이 더 버겁게 다가온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 꼭 해야할 일들, 꼭 관람해야할 것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이런저런 장벽들, 모르는 것들, 또는 각종 장애물까지. 모든 것이 매번 더 우리를 버겁게 한다.

그리고 당신이 인터넷에서 읽어봤음직한, 디지털 노마드가 얼마나 멋진 삶인지에 관한 글들은 일단 다 거짓말이다. 당신에게 뭔가 제품을 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혹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특정한 서비스, 그것도 아니면 코칭 세션 등을 팔기 위한..

그들은 당신에게 ‘꿈’을 팔아넘기려 애를 쓴다. 다른 말로 하면 ‘라이프스타일 패키지’일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유 패키지’, 하여간 온갖 이름을 갖다붙인 패키지들. 한 달 99달러에 모십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자유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나. 클릭 몇 번으로 자유를 산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자유에 대체 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자유(freedom)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 아닌가. 그것도 무료로(for free).

세상은 분명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걸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최근의 시간들을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간 경험하고 배운 것들 역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분명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저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간다는 게 대체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그림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 해변가에서 일하기

당신이 인터넷에서 봤음직한 해변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사진은 정확히 말하자면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에어컨이 없는 뙤약볕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시도해봐라. 몇 분 안 가서 죽을 것 같다고 느낄 것이다.

에어컨 없이 해변가에서 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그런 끝내주는 장소들은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다.

믿기 어렵다고? 그렇지 않을 거다.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름날 야외에서 한두시간 정도 업무를 해봐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업무와 여행

머무르는 지역을 바꿀 때마다 당신은 며칠의 시간을 손해 볼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있어도 일을 하는 데 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도시에 갔으면 그곳을 둘러봐야하지 않겠는가.

혹시 그런 쪽에 취미가 없다고 해도, 당신은 그 도시에서 간단한 생필품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지 등을 새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삼시세끼 다 맥도날드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2주에 한 번씩 지역을 바꾸면서 규칙적인 업무 패턴을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대충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나의 업무 스타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끔은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방문한 도시가 맘에 들지 않거나, 호스텔이 거지같을 때면..

이걸 생각해보면 쉬울 거다. 사무실이 아닌 곳들에서 ‘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그래, 때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집안이 완전히 통제된 환경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소한 몇 가지만 틀어져도 집중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 거주

거주지로서 괜찮으면서 일까지 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무지막지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여기에서 인터넷은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뭐 에어비앤비로 해결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엔 진짜 집이 거의 없다. 최소한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에선 그랬다. 대개는 호스텔의 도미토리 광고였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 괜찮은 실제 거주용 아파트가 올라왔다고 해도, 지낼만한 곳들은 예약이 꽉 차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잠은 호스텔에서 자고,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 역시 썩 괜찮은 대안이 아니었다. 시도는 해봤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스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또 호스텔에서 자는 경우엔 제대로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다. 다음날이면 일을 하기엔 너무 피곤하기 일쑤다. 귀마개를 끼고 잔다고 해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 다섯 잔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돈이 많다면 모르겠다만.. 매번 호텔에 투숙하는 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 고립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나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단기 렌트를 할 수 있는 아파트나 그 외 괜찮은 장소를 찾아서 100%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였다. 마치 지금처럼.

지난 이틀간은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려고 다가오는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다른 모두가 재밌게 놀고 있을 때, 모두들 술 한 잔 걸치고 파티를 즐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세 달 반 사이에 나는 파티에 겨우 두 번 갈 수 있었을 뿐이다.

결론은 이렇다:

뭔가를 해내고 싶다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다면(그저 관리하기 말고), 남들 하는 걸 똑같이 즐기면서 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냥 집에 있었어도 뭐…

# 외로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마치 꿈 속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개소리'(bullshit)라고 한다. 이런 삶의 방식, 진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무척 외롭기도 하다. 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이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데에 걸림돌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일 것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보낼 줄 모른다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절대 당신에가 맞는 방식이 아니다.

# 루틴

업무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는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다니는 동안에는 이런 루틴을 지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나에게 루틴을 지키는 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뭔가를 계속 하는 것! 개인적으로 효과를 본 방법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걸 발행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스 이동으로 써버렸는지, 그날 무슨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한 번 이걸 해내니까, 점차 다른 일들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루틴을 정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뭔가 제대로 해내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중요한 걸 살펴보자.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 이건 당신에게 꿈을 팔아서 지갑을 채우는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끝내주는 삶, 디지털 노마드라는 꿈!

디지털 노마드 현상에 버블이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한 명만 나에게 소개해달라. 단, 그 사람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하고 뭔가 팔려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자유 패키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인터넷 강의, 무슨무슨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티켓, 다 안 된다.

진짜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들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뽐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고, 그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다.

#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내가 보고들은 바로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프리랜서 활동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친 활동과 노력으로 당신의 이름값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고, 당장 내일 어느 섬나라에 가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 주위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세우고, 작업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채워야 한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자유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인터넷 강의 수강하는 시간보다는 훨씬 오래.

# 관리 vs 설립 (management vs. building)

디지털 노마드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도 있긴 하다. 이미 잘 돌아가는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로 변신하기에 앞서서 이미 설립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비즈니스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은, 그 시작을 여행과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는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상품화한다거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경우엔 얘기가 통한다. 실제로 시장에서 그런 상품이 팔리니까. 아마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비즈니스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소위 디지털 노마드들이 그 길로 들어선 이유다. 음..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니까. 또 나는 이처럼 돌아가는 것들을 진지하게 믿는 편이다.

난 그저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에 마음을 쏟기 전에 몇 가지를 알아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걸 믿게 되기 전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믿기에 앞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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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한국어 통사구조와 숙어 속 일본어 흔적

2009년쯤부터 언어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철지난) 언어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니 ‘순우리말’ 같은 관념에 골몰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된 언어’를 읽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쓰고 있는 이 한국어라는 언어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서양의 관념과 제도, 문물이 일본어를 통해 한국에 정착한 과정에 흥미를 가장 많이 느꼈다.

오늘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가 차용한 일본어뿐 아니라, 통사구조와 숙어 수준에서도 한국어가 받아들인 일본어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아래는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에 실린 ‘조망-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이 같은 일본어의 흔적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면서 섞이고 스며들며 더욱 탄탄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문법 표현

[1]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그 비율 면에서는 비록 어휘 부분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지만 문법적 표현들에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사 ‘-의’의 과도한 사용 문제이며, ‘-에 있어서, -에서의, -(으)로서의’ 등과 같이 조사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일본식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음이 그러한 예문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새로운 도약에의 길/범죄와의 전쟁/앞으로의 할 일/한글만으로의 길/제 나름대로의 기준

[2]

문법 표현 중에 하나로서 접미사 ‘-적’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도 지적할 만하다. 그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접미사 ‘적’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같은 백화문(白話文) 자료에서 사용되었던 예를 제외하고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던 말이다. 이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은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그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본어와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적’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서재극(1970;95-6)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的(teki)「佛-tique, 英-tic」 -的
  중국어의 ‘底’에 해당됨. 明治初에 柳川春三이 처음으로 -tic[note]요즘은 이 ‘-tic’ 자체를 한국어 언중이 쓰고 있기도 하다. ‘-틱하다’라는 형태가 주로 쓰인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자료[/note]에다가 的이라는 字를 갖다 붙었다(科學的, 社會的, 心理的, 目的的 등). -“角川外來語辭典”에서
  ‘的’字를 쓰게 된 것은 -tic과 的이 音이 닮았다는 것으로 하여 익살맞게(우스개 삼아) 말한 것일 따름. -大規文彦의 “復軒雜錄”에서

  이 ‘-적’이 우리말에 유입되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서재극(1970;95)에서는 “상필 일본에 유학했던 자에 의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사용된 것은 1908년에 발간 “소년”지에서부터”라고 지적하고 있다.

통사 구조

[1] 출처: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 ‘일본어투 문장 표현

현대 국어의 “왔다리 갔다리”외 ‘-다리’는 일본어 “行ったり來ったり”에 보이는 형태 ‘-たり’의 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의 차용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어의 언어 접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처 위와 같음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7)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8) (아이들이) 보아야 할 책이다.
(9)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숙어

[1]

애교가 넘친다-愛嬌が益れる / 달콤한 말-甘い言葉 / 숨을 죽이다-息を殺す / 종말을 고하다-終りを告げる / 어깨를 나란히 하다-肩を竝べる / 기억이 되살아나다-記憶が蘇る / 기가 막히다-氣が詰まる / 희망에 불타다-希望に燃える / 혀를 깨물다-舌をかむ / 패색이 짙다-敗色が濃い /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他の追隨を許さない / 눈을 의심하다-目を疑う / 귀를 기울이다-耳を傾ける / (국제적 마찰을) 불러일으키다-呼び起こす / (석간에) 사진이 실려 있다-寫眞がのっている / 빈축(頻蹙)을 사다-頻蹙を買う

[2] 출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옛이야기 사랑방’

⑧ 통사 층위의 관용적 비유의 차용

흥분의 도가니, 도토리 키재기, 새빨간 거짓말,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호감을 사다, 눈살을 찌뿌리다,
의기에 불타다, 콧대를 꺾다, 무릎을 치다, 손꼽아 기다리다,
종말을 고하다, 패색이 짙다, 낙인을 찍다, 마각을 들어내다,
종지부를 찍다, 폭력을 휘두르다, 비밀이 새다, 낯가죽이 두껍다,
손에 땀을 쥐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순풍에 돛을 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note]일본어 원래 표현이 없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note]

 

같은 주제로 예전에 기록한 글: 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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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영어

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완결성을 갖춘 글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히겠다. 그리고 내 독창적 문제 제기도 아니다. 다음카페 ‘함께 영어를 배우자’의 ‘감각개념’이라는 분이 쓴 글이 시작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라며, ‘감각개념’님의 사실 언급에 몇 가지를 덧붙여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부분을 공유하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다. 글의 흐름에 신경쓰기보다는 간단한 사실만 나열한다.

1. 학교에서 배우는 영문법 용어, 어디서 왔을까

– 거의 100% 일본제 한자어를 수입했을 것으로 추정.

예) 아래 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문법 용어랑 거의 다 일치하는 것 같다. 내가 한자에 워낙 약해서 조금 비교해 보다 말았다 ㅡㅡ

日本語 ふりがな ROMA-JI ENGLISH
品詞 ひんし hinshi part of speech / word class
名詞 めいし meishi noun
代名詞 だいめいし daimeishi pronoun
動詞 どうし doushi verb
他動詞 たどうし tadoushi transitive verb
自動詞 じどうし jidoushi intransitive verb
助動詞 じょどうし jodoushi auxiliary verb
形容詞 けいようし keiyoushi adjective

출처: English grammar terms in Japanese kanji, hiragana, and Roma-ji.

2.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현대 한국어에서 쓰이는 수많은 개념어는 대부분 일본제 한자어의 차용이다. 

예)

◦ 철학 용어: 관념(觀念), 시간(時間), 선천(先天), 원리(原理), 의무(義務), 이상(理想), 철학(哲學), 추상(抽象), 현상(現想), 후천(後天)

◦논리학 용어: 귀납법(歸納法), 긍정(肯定), 내포(內包), 명제(命題), 부정(否定), 연역법(演繹法), 외연(外延)

◦심리학 용어: 능력(能力), 본능(本能), 의식(意識), 정서(情緖), 직각(直覺)

◦기타: 과학(科學), 관능(官能), 관찰(觀察), 기술(技術), 예술(藝術), 인상(印象), 지질학(地質學), 충동(衝動)

출처: 근대어 성립에서 번역어의 역할―일본의 사례 (pdf 바로 가기 & 새국어생활 홈페이지 바로 가기)

3. 문제는 무엇인가? 일본식 한자 읽기와 한국식 한자 읽기가 다르다. 일본어에선 의미 이해에 방해되지 않을 한자 개념어들이 한국어에선 의미 이해를 방해한다.

예)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영문법 용어에 쓰이는 ‘부정’이라는 단어: 부정관사와 부정사.

한국어에서 ‘부정’이라고 말하면 보통은 1)’올바르지 않음'(不正) 2)’그렇지 않다'(否定)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유독 영문법에서만 ‘부정’이 3)’정해지지 않음'(不定) 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평소 언어 습관과 판이하게 다른 ‘부정’관사와 ‘부정’사의 뜻을 접하면서 혼동을 겪는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 영문법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결과다. 일본어에서는 세 단어의 발음이 모두 달라서 이런 혼동이 없다.

1)’不正'(올바르지 않음)은 ‘ふせい fusei’라고 읽는다.

2)’否定'(그렇지 않다)은 ‘ひてい hitei’라고 읽는다.

3)’不定'(정해지지 않음)은 ‘ふていfutei’라고 읽는다.

4. 극복 방안은?

지금껏 해왔듯 영어 수업시간에 매번 한자 뜻 풀이를 한다.

새로운 한국식 번역어를 만든다.

문법 용어를 그냥 영어로 쓴다.

…?

* 한자를 거의 모르고 일본어를 완전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일본 논문을 직접 찾아보면 도움이 될 텐데…

* 본문에 링크한 것 외에 지금까지 찾아본 자료:

Japanese English Education and Learning:   A History of Adapting Foreign Cultures

The First English Grammars of the Edo Period :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Parts of Speech

한국 영어 교육 학습서의 역사

지금 막 찾았으며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자료:

English Language Education in Korea Under Japanese Colonial

한국의 영어교육사 : 19세기 이후 한·영·미·일 비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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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삼총사’의 번역 타당성, 그리고 그 쓰임새

‘삼총사’에서 ‘총사’의 뜻이 ‘총을 사용하는 병사’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새로 알게된 사실을 기념하며(?) ‘musketeers->총사’ 번역에 관한 이야기와, 현대 한국어에서 삼총사라는 단어가 쓰이는 모습에 관해 다뤄볼까 한다.

영어판 제목(The Three Musketeers)과 프랑스어 원 제목(Les Trois Mousquetaires) 모두 ‘머스켓(총기의 일종) 병사 세 명’이라는 뜻이고, 일본어와 한국어판 번역 제목도 ‘삼총사’다.

그런데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칼로 싸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런 사정에 관해 한국 위키피디아의 ‘삼총사'(바로 가기) 항목에는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우리말 뉘앙스 사전'(박영수 저)의 설명이 인용돼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칼을 잡고 싸우며 작품 속에는 머스켓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뒤마의 시대에는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병사’라는 의미로도 쓰였는데 이를 모른 일본 번역자가 오역한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머스켓이라는 단어의 뜻이 총사가 아닌 일반 병사로도 통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박영수씨가 삼총사 번역에 관해 제시한 설명이 틀린 게 아닐까 싶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Musketeers of the Guard’의 대표 인물 항목(바로 가기)에 따르면, 일단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Musketeer’가 맞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Musketeer’의 프랑스편 하위 항목(바로 가기)에 있는 이미지를 보면 그들은 언제나 총기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같은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프랑스의 Musketeers는 “1622년 루이 13세[note]루이 8세라고 잘못 썼던 부분입니다[/note]가 경기병(Light Cavalry) 중대에 머스킷을 공급하면서 창설”됐다는 설명이 있다.(They were created in 1622 when Louis XIII furnished a company of light cavalry with muskets)

그리고 “말, 총, 의복, 하인과 각종 장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머스켓과 그들 고유의 파란 옷만 국왕에게서 제공받았다”라는 말도 나온다.(These included the provision of horses, swords, clothing, a servant and equipment. Only the muskets and the distinctive blue cassock were provided by the monarch)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영어권 질답 페이지들을 검색해본 결과,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머스켓보다 주로 칼을 이용해 싸우는 것은 당시까지 머스켓이 그리 간편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참고 1, 2, 3)

프랑스 총사 방위대(Musketeers of the Guard) 소속이었을지라도, 병사들은 평소엔 총 대신 칼을 소지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머스켓은 장전도 느렸고 휴대하기에 무거운 총이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호신용 무기로는 머스켓보다 칼이 훨씬 유용했다는 말이다.

결국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당시엔 그냥 병사를 뜻했지만 그 사실을 몰라 ‘총사’라고 잘못 번역했다는 설명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믿을만한 얘기도 아닌 것 같다.

달타냥은 분명 머스켓을 지급받는 ‘총사’였다. 용어 번역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사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소설 2권 4장 ‘라로셸 포위전’에서 머스켓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번역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자.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간단한 인상이다.

‘삼총사’는 현대 한국어에서 사람 세 명이 모이면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말이 된 것 같다. 실제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삼총사의 두 번째 뜻으로 “친하게 지내는 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제시돼 있다.

일본에서 탄생한 번역어 ‘삼총사’는 한국에서 ‘총사’의 원래 의미를 거의 잃어버린 모양새다. 나만 해도 ‘총사’라는 말이 ‘총을 든 병사’라는 걸 최근에 알았으니까(나만 몰랐나?)

그냥 세 명이 몰려 다닌다면, 그들은 보통 삼총사라고 불리게 된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에서는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결과로…

yg

이런 경우가 있고…(1991년 작)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는 하필 세 명인데다 그들이 각종 임무에 싸움까지 벌이니 미녀 ‘삼총사’가 됐고
(사실 ‘찰리의 천사들’보다 훨씬 괜찮은 제목 같다)

조선 미녀 삼총사

이런 영화 제목도 나오고…

빙속

이렇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한테도 쓰이는 말이 됐다.

또 흥미로운 건, 이렇게 세 명이 모였을 때를 설명하는 말로 ‘삼총사’가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네 명, 다섯 명이 모였을 경우에도 ‘사총사’나 ‘오총사’라는 말이 쓰인다는 사실이다.

‘총사’는 원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여러 명이 모인 경우라면 대부분 가져다 쓸 수 있는 접미사처럼 변해 버렸다.

quiz

KBS2 아침 프로그램 제목 ‘퀴즈쇼 사총사’.

오총사

한경닷컴 기사(바로 가기)

오총사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총사’ 검색 결과

검색해보면 육총사, 칠총사, 팔총사, 구총사 그리고 십총사까지도 그 쓰임새가 넓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언어 변이는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다.
나중에 이 문제에 관해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땐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사정도 좀 알아봐야겠다.

* 혹시 위에서 언급한 ‘삼총사’ 번역 문제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아는 분이 계시다면… 트위터나 이메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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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은 가짜 뉴스다

* 아래 글은 2014년 1월 최초로 작성된 후, 같은해 3월 ‘듀프리의 덧붙임 말’ 관련 내용이 보강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1월 15일 해당 부분의 이미지가 깨진 것을 파악해, 한 차례 더 수정되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보니 다시 써버리고 싶을 정도로 글 짜임새가 엉성합니다..)

위의 변경사항은 ㅍㅍㅅㅅ에 실린 같은 게시물 말머리의 “주의: 현재 이 글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부분이 지칭하는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ㅍㅍㅅㅅ 게재 이후, 듀프리의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해당 덧붙임 내용이 유실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루머는 인터넷을 타고… ‘미국 어느 대학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에서 [‘미국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은 가짜 뉴스다]로 변경됐습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정보의 생성과 전파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1]이젠 특정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만큼이나 눈앞에 펼쳐진 자료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2]또한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자료가 한국어로 금방 번역 후 소개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에 대한 경계도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자료를 봤다.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경제학을 가르쳐 오면서 단 한명에게도 F 학점을 줘 본일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번 학기에 수강생 전원이 F를 받았다고 한다.

학기초에 학생들은 오바마의 복지정책이 올바른 선택이고 국민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하거나 지나친 부자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한 부를 누릴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지.

그러자 교수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 학기에 이런 실험을 해 보면 어떨까? 수강생 전원이 클래스 평균점수로 똑같은 점수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학생들은 모두 동의를 했고 그 학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얼마 후 첫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전체 평균점이 B 가 나와서 학생들은 모두 첫시험 점수로 B 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애들은 불평했고 놀기만 했던 애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번째 시험을 쳤다.
공부 안하던 애들은 계속 안했고 전에 열심히 하던 애들도 이제는 자기들도 공차를 타고싶어 시험공부를 적게 했다.
놀랍게도 전체평균이 D 학점이 나왔고 모든 학생이 이 점수를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모든 학생들이 학점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애들은 없었다.

그 결과 다음 3번째 시험은 모두가 F 를 받았으며 그후 학기말까지 모든 시험에서 F 학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불평했지만 아무도 남을 위해 더 공부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학기말 성적표에 F 를 받았다.

그제서야 교수가 말했다.

“이런 종류의 무상복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보상이 크면 노력도 많이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의 결실을 정부가 빼앗아서 놀고먹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이런 상황에서 성공을 위해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까

이 글을 본 페이지는 ‘헐ㅋ‘이라는 곳이고, 해당 포스팅 바로 가기는 이곳이다. 

논리구조의 황당함(‘복지=무상’ 등식, ‘오바마 복지=공산주의’ 등식)을 다루려는 게 아니다. 위 이야기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은 이미 차고 넘친다.

[1]

그보다 내가 더 흥미롭게 지켜본 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위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 현상이다. 나는 글을 여는 첫 단어인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 부분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허술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검색을 좀 해보니 스놉스닷컴에서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페이지 바로 가기 & 스놉스닷컴 관련 연합뉴스 기사 바로 가기)

이 이야기의 원형은 2009년 3월께 처음 만들어졌다. 2009년 3월판 이야기는 ‘텍사스테크대학 경제학 교수’가 ‘사회주의‘(socialism)를 언급하면서 저런 실험을 했다고 나온다.

텍사스테크대학교의 한 경제학 교수가 말하길, 그는 이제껏 학생을 낙제시킨 적이 없었지만 딱 한 번 수강 인원 전부를 낙제시킨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사회주의(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An economics professor at Texas Tech said he had never failed a single student before but had, once, failed an entire class.

The class had insisted that socialism worked and that no one would be poor and no one would be rich, a great equalizer.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텍사스테크대학교는 실존하는 대학이긴 하다)

2009년 3월이면 오바마가 임기에 들어선 직후이다. 결국 4개월이 지나자 이야기가 조금 윤색된다. ‘사회주의‘가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변한 것이다.

학생들은 오바마의 사회주의(Obama’s 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수는 말했다. “좋다. 이제 오바마의 계획으로 이 교실에서 실험을 진행해보자.”

That class had insisted that Obama’s socialism worked and that no one would be poor and no one would be rich, a great equalizer.

The professor then said, “OK, we will have an experiment in this class on Obama’s plan”.

(출처: 스놉스닷컴 해당 페이지 맨 마지막)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주제가 바뀐 이 이야기는 미국 인터넷을 휘저었다.

그리고 2013년 2월23일(현지시각), 웨인 듀프리라는 티파티 운동가의 홈페이지에 ‘이 선생 죽이는데! 오바마식 사회주의 실험 폭망, 수강생들도 전원 망함‘(THIS TEACHER ROCKS! Entire Class Fails when Obama’s Socialism Experiment Fails)이라는 식으로 또 게재됐다.

웨인 듀프리의 글은 지금까지 페이스북 공유 13만1000건을 돌파하는 등 미국 웹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14년 1월9일, 드디어 듀프리의 글이 한국 웹에 상륙했다.

일베 유저 ‘김승규’는  웨인 듀프리의 글을 “읽고 직접 번역”해 일베에 올렸다. 제목은 경제학과목에서 전수강생이 F 받은 이야기.ssul

이 번역본이 바로 맨 위에서 소개한 글이다.

좋든 싫든 일베가 한국 인터넷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구글과 네이버에다가 위 제목에서 .ssul을 뺀 다음 검색해보면 일베와 ‘헐ㅋ’ 페북 페이지 외에도

큰믿음교회 다음카페, 뮬 게시판, 딴지일보 독투불패, 여의도 경희윤동학한의원, Here I Coming이라는 개인블로그, 포모스 등 매우 많은 곳에서 이 게시물이 발견된다.

아마 제목을 바꿔 퍼간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이 목록은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

인터넷에는 값진 정보도 많지만, 근거 없는 ‘거짓’ 정보도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인터넷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토론하기 전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데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2]

그리고 듀프리의 글을 한국 웹으로 가져온 ‘김승규’는 잘못된 번역을 했다.

그는 원문에 쓰인 ‘Obama’s socialism’을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했다.

이는 원문이 포함한 ‘사회주의'(Socialism) 개념과 ‘공산주의'(Communism) 개념의 혼동에다가 새로운 혼란을 더한 꼴이 됐다.(원문과 번역문이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개념이다)

명백한 개념어인 ‘사회주의’를 두고, 어째서 번역문에다가 ‘복지’를 넣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한편 ‘김승규’는 듀프리의 덧붙임 말도 번역에서 제외했다. 듀프리는 원문 하단에 이런 말을 추가했다.

이 시나리오를 함께 접한 모든 분에게, 방문해주신 것과 이 이야기를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러분 대다수는 저와 생각이 비슷할 테고, 위 시나리오를 읽었을 테고, 그리고  이런 실험이 실제 교실에서 이뤄진다면 바로 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 낙제하겠죠. ‘만약’이나 ‘하지만’ 따위는 없습니다.

(…)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만 개념 자체는 사실입니다! 결과 역시 사실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면서, 사회주의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일깨워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For everyone that has joined into to this scenario, thanks for visiting and even reading it. Many of you are like-minded and have read through the story and know if this was enacted on a classroom this would be the outcome. Everyone would fail, no ifs, ands or buts.

(…)

This story is not TRUE but the idea is! The results are TRUE!

Thanks again for sharing this and keep doing so to people that can think clearly and understand that SOCIALISM DOESN’T WORK.

‘김승규’는 “This story is not TRUE”라는 원글 작성자의 말을 어째서 번역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걸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이런 누락은 그 자체로 심각한 ‘오역’이다. (*글 하단의 추가 사항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오바마의 사회주의’를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하고, 원작자의 덧붙임말을 떼어내 버리는 사람은 온전한 의미의 번역자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그가 생산해낸 오역은 아래 같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 2014년 3월 27일 추가 사항-2017년 1월 15일 이미지 파일 복구

오늘 확인해 보니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이 없어졌다.

그리고 듀프리의 홈페이지에서 덧붙임 말(This story is not TRUE 부분)과 1000개 넘던 댓글도 사라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댓글 1274개가 달렸던 흔적은 이곳 (혹은 스크린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듀프리가 남긴 글의 흔적은 이곳과 아래 스크린샷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