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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책 읽고 씁니다

‘파리에서 온 낱말’ 밑줄긋기

파리에서 온 낱말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 이틀에 걸쳐 읽었습니다.  책에 관한 소개는 출판사의 소개글로 대신하며, 본문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옮겨적겠습니다. 몇몇 부분은 짧은 생각도 덧댔습니다.

출판사 책소개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프랑스어를 통해 그 말 속의 문화적 의미를 반추한 책이다. 단순히 프랑스어 낱말의 뜻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우리 문화와 비교하며 함께 돌아본다. 우리말 속에는 알게 모르게 프랑스어가 많이 숨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을 찾아내고 어원을 밝혀내는 과정은 언어를 통해서 문화적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프랑스에는 “두 가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문화를 아는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 모르고 사용하면 그저 외래어일뿐이지만, 알고 사용하면 문화를 들여다보는 간편한 렌즈가 된다. <한겨레21>의 파리통신원으로 활동했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한 정치학 박사 최연구는, 이 책에서 낱말이라는 쉽고 친근한 매개체를 통해 프랑스문화와 우리 문화를 톺아보며 지금 여기에서 프랑스적 앎과 삶을 만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책입니다. 자세한 목차는 '이곳'에서..
이런 책입니다. 자세한 목차는 ‘이곳‘에서..

줄긋기

• 샹파뉴
우리나라에서는 샹파뉴를 샴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 어떤 기사를 보면 샹파뉴는 지방의 이름이고, 샴페인은 그 지방에서 나는 발포성 화이트와인의 이름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샴페인은 그저 샹파뉴의 영어식 발음일 뿐이다. (18쪽)

:프랑스어에 대한 필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

• 미슐랭
프랑스인들은 미슐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타이어 제작사이면서도 미식가의 성전으로 불리고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를 발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42쪽)

: 타이어 제작사 미쉐린과 레스토랑 가이드북 이름 미슐랭은 이전에도 각각 알고 있던 것인데, 그 둘이 사실 같은 회사라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 아따블르의 오너
여기 프랑스 지역별로 대표적인 요리들을 소개해본다. 이 내용은 요리사이자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아따블르 A table‘의 오너인 필자의 아내 김수미가 월간 <쿠켄> 등 매체에 기고해온 내용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64쪽)

: 함께 프랑스에 정통한 부부라니, 조금 놀라웠습니다.

• 파티시에(르_
그런데 삼순이는 파티시에가 아니다. 프랑스어에서는 모든 명사가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별되는데 파티시에는 남성형으로 남성 제과사를 뜻한다. 삼순이의 겨우 여자이므로 파티시에르가 맞다. (78쪽)

:역시 프랑스어에 대한 필자의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

• 영어 문화권
‘마이웨이’도 마찬가지다. 앵글로색슨의 영어 문화권에만 길들여져 그 밖의 문화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지한 우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89쪽)

: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 역시 프랑스문화와 프랑스어에 무지한 입장인지라, 마치 혼나는 느낌이라 읽으면서 썩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 요리와 과자
프랑스어로 사용되는 요리 이름은 너무나 많다. 메뉴menu 부터가 프랑스어다. 과자 상표에서도 프랑스어는 자주 사용된다. ‘몽쉘통통 mon cher tonton: 나의 친애하는 아저씨‘, ‘뽀또poteau: 단짝‘ 등이 있고, 제과 체인점인 ‘뚜레쥬르tous les jours‘는 ‘매일매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93쪽)

• 카바레, 살롱, 마담
생각해보면 프랑스어의 카바레, 살롱, 마담 등의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모두 향락산업과 관계가 있다. 이 단어들이 이역만리 한국에서 선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이상한 용어로 둔갑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엄청나게 다혈질인 프랑스인들은 격분할지도 모르겠다. 카바레, 살롱, 마담 같은 말은 프랑스에서는 한없이 문화적이고 고급스런 말이며 또한 역사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살롱은 역사적 산물이며 지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114쪽)

• 플래카드
행사장에 거는 플래카드(placard, 프랑스어로는 플라카르)도 프랑스어다. 플래카드는 게시문이나 격문을 뜻한다. (129쪽)

• 세무와 샤무아
우리가 세무로 부르는 용어는 프랑스어 샤무아chamois의 일본식 발음이다. (141쪽)

• ‘데님’의 유래
청바지 소재의 명칭 ‘데님’도 프랑스어에서 유래한다. (…) 어원을 따져보면 프랑스어의 드님de Nimes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드de는 ‘~의’를 뜻하고 님은 프랑스 남쪽의 도시 이름으로 마르세유와 몽펠리에의 중간쯤에 있는 랑그독 지방의 도시다. 데님은 바로 이곳에서 난 질긴 옷감이다. (142쪽)

• 마Ma와 몬Mon
인기 걸그룹 씨스타의 노래 중에 ‘마보이Ma Boy‘란 노래도 잘못된 표현이다. 프랑스어의 여성 소유격 Ma와 영어 Boy가 국제적으로 결합하면서 K-Pop 인기가요의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문법적으로 따지면 매우 혼란스러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163쪽)

: 이 부분은 나름 재미로 넣으신 것 같은데, 조금 부담스럽다고 해야하나…

• 벨로
바퀴가 직경 20인치 이하로 작은 자전거를 미니벨로라고 통칭하는데, 벨로velo는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뜻한다. (185쪽)

• 부케
프랑스어 ‘부케bouquet‘는 ‘꽃다발’을 의미한다. (201쪽)

• 샴페인
어떤 도시에서는 와인이나 고급 샴페인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207쪽)

: 원고에서도 “샴페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저자가 샹파뉴라고 쓴 것을 편집자가 샴페인이라고 고친 것일까요.

• 쿠데타
그러나 정작 쿠데타라는 용어의 본산지인 프랑스에서는 쿠데타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고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군부세력에 의한 불법적인 권력 장악을 표현할 때 ‘푸치putsch‘라는 독일어를 더 많이 쓴다. (241쪽)

• 외교 용어
그래서 지금도 외교 용어에는 프랑스어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외교에서 영어가 프랑스어를 밀어내고 새롭게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249쪽)

• 톨레랑스
톨레랑스는 동양적 의미의 너그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톨레랑스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 방어의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 개념이다. 이견이나 차이에 대한 의도적 용인에서 끝나지 않고, 이견과 차이의 존중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의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톨레랑스가 있는가? 있다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톨레랑스가 주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색깔론만 봐도 톨레랑스의 사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좀 우스개 소리지만 회사의 단체회식으로 중국집에 가서 다들 짜장면을 시켰는데 누군가 볶음밥을 시키면 눈치주는 분위기나 부장이 “자, 다들 먹고 싶은대로 시켜! 근데 나는 짜장면.” 이라고 하면 모두 짜장면을 시키는 것도 톨레랑스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톨레랑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치열한 고민과 갈등을 거치면서 정착되는 성숙한 문화다. (254~255쪽)

 

읽은 기간: 2015년 2월 9일 ~ 2015년 2월 10일
정리 날짜: 20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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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역사 – 개방의 아이콘, 영어

 

일단 영어는 ‘게르만계'(German) 언어다. 영어는 독일어와 출생의 비밀(!)을 공유한다. 역사언어학 자료를 보다 보면 고대~중세 독일 지방에서 쓰였던 언어와 당시 영국 땅에서 쓰였던 언어를 비교하는 자료를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대 독일어와 현대 영어는 같은 뿌리(고대 게르만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머나먼 섬나라(켈트족이 살던 브리튼 섬)를 침략했다. 브리튼 섬은 본래 로마의 지배 덕분에 외부 침략을 막을 수 있었지만, 410년 로마군 철수 이후 게르만족의 침략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6세기쯤 브리튼 섬은 사실상 앵글로-색슨족의 터전이 됐다. 그들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유럽 대륙의 고대 게르만어와 달라졌다. ‘고대 영어’의 시작이다.

한편 브리튼 섬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이름(앵글로)에서 유래한 지명 ‘잉글랜드’까지 쓰기 시작했지만, 앵글로-색슨족도 계속 외부 영향을 받았다.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는 크게 세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브리튼 섬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켈트어’, 로마 지배 흔적이자 597년 잉글랜드의 기독교 개종 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라틴어’,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지속된 바이킹 침략으로 유입된 ‘스칸디나비아어’다.

특히 라틴어와 스칸디나비아어의 영향이 중요했다. 라틴어는 유럽 문명권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고, 스칸디나비아어의 경우 잉글랜드가 덴마크 왕 크누트의 지배를 받기까지 했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마 지배 시기와 관련해 잘못 서술됐던 내용이 수정됨 )

한편 가장 중요한 침략은 1066년 일어났다. 그 해 프랑스 지역의 한 공국(그땐 프랑스라는 단일국가의 개념도 모호했고, 프랑스 왕이라는 지위보다 각 공국의 왕이나 지방 영주들의 힘이 더 강했다)이었던 노르망디 공국이 잉글랜드 영토를 점령한 것이다. 이것을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고 부른다. 이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는 잉글랜드 영토와 노르망디 영토를 동시에 지배했다.

노르만 정복과 함께 잉글랜드 땅에는 프랑스어가 침투했다. 공국이니 뭐니 해도 어쨌든 노르망디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었으니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영어는 ‘프랑스어’를 대거 받아들였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언어가 겪은 일과 유사) 또한 프랑스어를 타고 들어온 라틴어를 다시 한 번 흡수하게 됐다.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천민의 언어’로 구박 받았지만(당시 영국 지배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영어는 하층민의 언어였다), 소멸하지는 않았다. 이는 13세기 초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왕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노르망디 영토를 잃어버린 것과 130여년 후 일어난 백년전쟁으로 ‘反프랑스 정서’ & ‘영국인이라는 자의식’이 생겨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겨우 제 정체성을 지켜낸 영어는 14세기 영문학의 아버지 초서와 16세기 셰익스피어의 재능에 힘입어 당당하게 단일 언어로 자리 잡았다.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영어로 문학 작품을 쓰던 당시, 영어는 결코 세련된 언어가 아니었다. 사실 영국 자체가 16세기 이전까지는 ‘변방의 섬나라’ 취급을 받는 삼류 국가였다.

초서와 셰익스피어는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 당시 일류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 공부에 조금 게을렀던 터라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각각 이탈리아/프랑스에서 정확히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까지는 확실히 말하기가 힘들다. 다만 지금도 초서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학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가 희곡 외에도 재능을 발휘했던 ‘소네트'(sonnet)는 장르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 ‘소네토'(sonetto)에서 왔다는 점만 밝혀두겠다.

게다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였다. 14세기 이후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꾸준히 접했고 그 과정에서 라틴어의 흔적도 계속 받아들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 세워지기 시작한 영국 ‘대학’ 등에서는 고전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학술적인 이유로 직접 수입하고 있었다. 

이렇듯 단일 언어라고 명함을 겨우 내밀 수 있게 되기까지 다른 언어의 영향(주로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영어는 제 힘이 강력해진 뒤에도 다른 나라 말을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국 땅으로 건너간 영어는 원주민 언어를 대거 차용했고, 호주 땅에 스며든 영어는 역시 그곳 원주민들의 말을 상당수 흡수했다. 물론 그곳에서 영어가 원주민의 언어를 거의 말살했다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만, 영어가 그 언어들의 어휘를 차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영어는 외국어를 받아들였던 개방성만큼이나 자기 언어가 변하는 데 무심(?)했다. 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이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같이 자국 언어를 보호하면서 ‘바르고 고운말’을 권장하고, 동시에 그 힘이 상당한 국가적 언어 규범 기관이 영어권 국가엔 별로 없다. 다만 영국인과 미국인은 대중의 언어 습관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18세기 영국에선 사무엘 존슨의 사전이, 19세기 미국에선 노아 웹스터의 사전이 탄생했다.

그리고 영어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단어를 흡수하는 중이다. 영어는 무한증식하는 개방형 언어의 표본이다.

이상 평범한 영문학 학부생이 기억과 간단한 검색에 의존해서 쓴 영어의 역사다.  아무튼 위와 같은 역사를 지나온 결과 영어 어휘는 아래 그래프가 보이듯 다양한 출신 성분을 갖게 됐다.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함께 읽을 글: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위해 알아야 할 영단어의 4가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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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위해 알아야 할 영단어의 4가지 결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영어는 전 세계 언어 가운데 어휘를 가장 많이 보유한 언어이다. 이번 포스팅은 그러한 영어의 특성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영어 학습자인 우리가 ‘말하기'(혹은 스피킹 혹은 프리 토킹)를 제대로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각종 영어 시험에서는 고득점을 올리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대화를 원활하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영어의 역사 – 개방의 아이콘, 영어

이전에 작성했던 글에서 역사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는 판단이 들어, 역사 부분을 대폭 축소하고 원본을 다른 글로 옮겼다. (바로 가기)

영어는 발달과정에서 많은 어휘를 받아들여 ‘포섭’했다. 앵글로 색슨족의 고대 게르만어에서 시작한 영어는 브리튼섬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켈트어’,  로마 지배 흔적이자 597년 잉글랜드의 기독교 개종 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라틴어’,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지속된 바이킹 침략으로 유입된 ‘스칸디나비아어’, 그리고 11세기 발생한 ‘노르만 정복’ 이후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영제국 시기의 영국 정부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들에 대해 정책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도 영어 어휘가 풍성해지는 데 한 몫을 했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의 국제 질서에서 사실상 가장 광범위한 공용어로서, 영어는 전 세계 언어들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그러한 언어들로부터 쉬지 않고 단어들을 흡수하고 있다.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2] 영어의 ‘잡스러움’을 대하는 어휘책/대다수 영어 교육자들의 자세

그런데  이런 영어의 ‘잡스러움’을 두고 우리나라 시중 어휘 교재들과 국내 영어 공부 담론이 제시하는 대응책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절대 다수의 어휘집과 영어 교육자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출신 단어들을 강조한다. 라틴어 기반 단어가 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은 ‘어근’과 ‘접사’를 떠올려 보시라. 어근과 접사로 분리가 가능한 단어는 십중팔구 라틴어 기반 단어다.  우리가 ‘시험’을 위해 암기한 대부분의 단어는 라틴어에 기반을 둔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출신 성분을 수치로 봐도 ‘영어 시험’의 고득점을 위해서는 그런 단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이건 당연한 전략이다. 

그런데… 라틴어 출신 단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하는 이 전략은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 정말 필요한 단어를 놓치게 하는 심각한 원인이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분들은 아래 설명에 집중하시길 부탁한다.

[3] 영어 단어를 나누는 새로운 틀

이제부터 영어 단어의 종류를 나누는 틀을 하나 더 제시할까 한다. 내 독창적인 분류는 절대 아니다. 신촌 한겨레교욕문화센터에서 ‘레토리컬 라이팅'(번역/외국어->Rhetorical Writing)을 강의하시는 라성일 선생님에게서 배운 내용이다. (바로 가기)

영어 단어는 대략 4가지 층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4가지 분류는 영어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어에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1. 태어나서 유아기에 습득하는, 생존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 어휘’

– go, come, have 등이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 교육받더라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면 거의 익히게 된다.

2. 아동-청소년기를 거치며 습득하는,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기술(descriptive) 어휘’

– spurn, befuddled, itchy 등이 있다.

– 영미권 화자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이 단어들을 습득한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단어는 바로 이 단어들. “너 어제 고백했는데 차였다며?”, “어제 폭탄주 왕창 마셨다가 완전 뻗었어”, “일본 여행 갈 생각에 벌써 발이 근질근질하다” 등의 말들을 하기 위한 단어가 바로 기술 어휘이다.

– 이런 단어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출신이 아니라 고대 게르만어에 뿌리를 두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경우가 절대다수. 우리말의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다. ‘오늘’과 ‘금일(今日)’은 사전적으로 동의어지만, 일상 대화에서 훨씬 자연스러운 단어는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오늘’이다.

3. 지성을 갖춘 개인으로서, 수준 있는 글을 읽거나 쓸 때 혹은 진지한 토론을 할 때 꼭 필요한 ‘교양 어휘’

– conform, disambiguation, federation 등이 있다.

– 대체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간직하고 있는 단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고교 영단어집으로 유명한 능률 보카 어원편이 바로 이러한 어휘들을 수록한 교재다. 능률 보카뿐 아니라 시중 대부분의 영단어 교재들은 바로 이 교양 어휘를 표제어로 삼는다.

– 영미권 화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이 어휘들의 빈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이 역시 한국어의 상황과 유사하다. 우리의 평소 대화를 잘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엄격한 규칙을 준수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명확성을 보장하는 언어사용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과의 연합을 구성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대중적인 소설에도 저런 문장들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4. 각종 전문 분야에서 (혹은 오로지 해당 분야에서만) 쓰이는 ‘전문 어휘’

– hexameter, chiasmus, parallel 등이 있다.

– 내 전공인 영문학과 영어 문체에 관한 단어들이다. 전문 어휘 층은, 해당 분야 구성원이 아닐 경우는 알 필요조차 없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혹은 평범한 단어지만 해당 분야에서만 특별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parallel의 경우, 대체로 ‘평행’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문체 분야에서는 ‘문장 구조의 의도적인 반복을 통해 길고 복잡한 내용의 원활한 전달을 달성한 글쓰기 기법’을 두고 parallel이라 지칭한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로서 토익 RC 450을 받아도 영어 소설은 버겁고, LC 450을 넘어도 미드는 안 들리고, 그 외 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려도 말하기(혹은 스피킹 혹은 프리토킹)이 여의치 않은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단어들의 성격 차이이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 대부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며 기본 어휘를 습득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교육에 적합하도록 선별된’ 지문을 읽으며 영어 공부를 계속한다. 이러한 지문들은 대부분 약간의 기본 어휘와 다수의 교양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토익을 공부하느라 또 다른 교양 어휘와 약간의 비즈니스 분야 전문 어휘를 익히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영어공부 과정만을 소화한 평범한 한국인에게, 영미권의 대중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그들의 일상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기술 어휘’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교양 어휘만을 공부해온 학습자라면, 듣도 보도 못한 기술 어휘가 대량으로 사용되는 보통의 영어 소설과 미국 드라마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이는 ‘미국 유치원생 수준’의 영어라는 것이 사실 한국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이에 대해서는 고수민님의 ‘뉴욕에서 의사하기’ 블로그의 글을 읽어보면 좋다. (바로 가기)

[4] 그럼 이제 남은 건?

영어 원서 읽기와 미국 드라마 시청을 방해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한 가지가 명확해졌다.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그 해결책도 함께 고민해보자.

1. 영미권의 영유아용 동화책과 청소년용 통속 소설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정리한다.

– 오랜 시간이 들고, 다소 금전적 지출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영미권 화자들이 기술 어휘를 습득하는 방법을 문자로나마 똑같이 따라 하는 과정이다. 어느 정도 단어를 확보하셨다면, 수준 있는 대중 소설로 천천히 옮겨가면 좋다.

2. 기술 어휘 단어집을 공부한다.

– ‘단어 교재 공부’이기 때문에 지겹다는 단점이 있으며, 시중에는 이러한 단어 교재도 거의 없다. 다행히도 괜찮은 기술 어휘 모음 단어집이 있다. 하나는 영국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English Vocabulary in Use 시리즈이다. 워낙 유명한 출판사의 유명한 책이니 따로 설명을 곁들이지 않겠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이다. 박인수씨가 지은『한국어 꺼라 영어가 켜진다』(구판 제목: 『잉글리쉬 마인드 트레이닝』)이다. 본문은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록의 ‘알파벳 에센스 느끼기’에는 알짜배기 기술 어휘가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다소 불필요한 단어가 수록되기도 했지만, 국내 시중 어느 단어집보다도 ‘기술 어휘’를 중점적으로 모아놓은 교재다.

사실 위의 두 과정을 병행하는 게 가장 좋다. 우리는 단어 몇 개를 습득하기 위해서 쉬운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만큼 마냥 여유롭지 않으며, 어휘집 단순 암기는 맥락 없는 ‘영단어-한국어 뜻’의 나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어집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단어를 확보하고, 동시에 문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단어의 실제 사용 예시를 직접 느끼는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5] 끝

아무쪼록 이 글이 높은 영어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영어 원서를 읽거나 영어 회화를 할 때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3년 3월 2일 이전 블로그에 최초로 작성된 후 4월 20일 1차 수정됐다. 그리고 2014년 2월20일 2차 수정과 함께 많은 내용이 추가됐고 경어가 생략됐다.

* 2014년 3월 8일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으면서 세 번째로 수정됐다.

* 2015년 1월 4일 역사 부분을 축소하고, 기존 서술을 별도 글로 분리했다.